(서울=연합인포맥스) 홍경표 기자 = 국민연금이 국내외 의결권자문사들의 잇따른 현대차 지배구조 개편안 반대에 고심하고 있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에는 의결권자문사의 반대에도 기금운용본부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찬성 의견을 밀어붙였지만, 현대차 개편안은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서 결정할 것으로 전망돼 의결권자문사 의견이 반영될 가능성이 커졌다.

◇국내외 의결권자문사, 일제히 현대차 개편안 반대 의견 제시

18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내 의결권자문사 중 하나인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은 현대모비스 분할·합병안에 반대 의견을 권고했다.

기업지배구조원은 현대모비스 분할·합병이 주주 이익에 반하며, 합병 효과가 불확실하다며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를 핵심부품 사업(존속부문)과 모듈·AS 부품 사업(분할부문)으로 분할하고, 분할부문을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내놨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는 이달 29일 각각 임시 주주총회에서 이번 분할·합병 승인 여부를 결정하게 된다.

기업지배구조원은 국민연금과 자문 계약을 맺고 있으므로 국민연금이 현대차 개편안 의사결정을 할 때 기업지배구조원 의견을 참고한다.

기업지배구조원뿐만 아니라 세계 양대 의결권자문사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와 글래드 루이스, 국내 의결권자문사인 서스틴베스트, 대신지배구조연구소 등도 현대차 개편안에 반대표를 던졌다.

ISS는 현대모비스 분할·합병이 현대모비스 주주들에게 불리하다고 지적했고, 글래드 루이스는 현대차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안이 의심스러운 경영논리에 바탕을 뒀을 뿐 아니라 가치평가가 불충분하게 이뤄졌다고 진단했다.

서스틴베스트는 합병비율 산정 시 존속 부문 가치가 과대평가되고 분할부문은 과소평가돼 문제가 있다고 설명했다. 대신지배구조연구소는 분할되는 사업 부문이 비상장 회사로 간주되면 공정가치를 평가받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반면 현대차그룹은 이번 개편이 현대모비스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필수적이며, 분할합병과 관련한 평가가 공정하게 이뤄졌다고 강조하고 있다.

◇의결권자문사 반대에 고민 깊어지는 국민연금

국내외 의결권자문사들이 연이어 현대차 개편안에 반대 의견을 내면서 국민연금의 고민도 깊어지게 됐다.

국민연금은 현대모비스 지분 9.82%를 보유해 기아차(16.88%)에 이어 단일주주로는 두 번째로 높은 지분을 가지고 있어, 현대차 개편안의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다고 평가받는다.

국내 주식 포트폴리오만 약 131조 원을 보유하고 있는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이 지금까지 다른 연기금과 기관투자자들의 판단 기준이 됐었기 때문에, 국민연금의 행보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민연금은 의결권자문사의 의견을 참고하기는 하지만, 의결권은 내부 투자위원회나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서 자체적으로 결정한다.

하지만 시장에서 국민연금의 결정을 주목하고 있고, 과거 삼성물산 합병 시 내부 투자위원회에서 섣불리 찬성했다가 기금운용본부가 홍역을 치른 적이 있어 이번 현대차 개편안 결정은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서 내릴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물산 합병 시에는 ISS와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서스틴베스트가 불공정한 합병비율로 반대 의견을 냈지만, 국민연금은 투자위원회에서 찬성 의사결정을 내렸다.

당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합병을 통한 미래 시너지 효과가 크고 엘리엇 등 투기자본으로부터 국내 기업을 지켜야 한다는 찬성 논리를 들었다. 이후 박근혜 정부의 외압에 국민연금이 무리하게 합병에 찬성했음이 밝혀졌다.

'삼성물산 학습효과'로 국민연금이 객관적인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의결권자문사의 결정을 추종할 가능성이 커졌으나, 현대모비스 분할·합병으로 인한 순환출자 해소 효과, 국민연금기금 포트폴리오 전반에 미치는 영향 등을 국민연금이 면밀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연기금의 한 최고투자책임자(CIO)는 "국민연금이 책임 회피를 위해 의결권자문사의 의견을 무조건 따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며 "포트폴리오 수익률과 리스크 등을 고려해 국민연금이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며, 결정하고 나서는 국민에게 결정 근거를 명확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kph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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