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홍경표 기자 = 국민연금이 현대차그룹 개편안 찬반을 민간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에서 결정하기로 하면서, 의결권전문위의 구성과 역할에 시장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의결권전문위는 기금운용본부 바깥에 있어 정부 등 외부 압력에 상대적으로 자유롭지만, 상설 기구가 아니고 교수들로만 이뤄져 시장 상황을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국민연금, 현대차그룹 개편안 외부 의결권전문위서 결정

2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현대모비스 지분 9.8%를 보유한 2대 주주로, 현대모비스 분할·합병의 '캐스팅보트'로 평가받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모비스를 핵심부품 사업(존속부문)과 모듈·AS 부품 사업(분할부문)으로 분할하고, 분할부문을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지배구조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는 이달 29일 각각 임시 주주총회에서 이번 분할·합병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미국 행동주의 펀드 엘리엇이 합병 반대를 외치고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도 일제히 반대 권고 의견을 내놓은 상황에서, 국민연금의 결정에 시장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국민연금은 내부 투자위원회를 열어 의결권전문위에 현대모비스 분할·합병 안건을 넘기기로 했다. 투자위원회가 결정하기 어려운 경제·사회적으로 중요한 의결권 안건은 의결권전문위에 회부할 수 있다.

의결권전문위는 국민연금의 독립적인 의결권 행사를 위해 기금본부 내부 인사중심의 투자위원회와는 별도로 2006년 설치된 외부기구다.

의결권전문위 위원은 정부·공공기관(기획재정부, 국민연금공단)과 사용자(한국경영자총협회, 대한상공회의소·중소기업중앙회), 근로자(민주노총, 한국노총), 지역가입자(소비자단체협의회, 공인회계사회), 연구기관(보건사회연구원) 등의 추천 대표로 구성된다. 정원은 총 9명이며 현재는 1자리가 공석이다.

현재 공인회계사회에서 추천한 황인태 중앙대 교수가 위원장으로 있다.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과 신현한 연세대 교수는 각각 기획재정부와 국민연금공단이 추천했다.

최준선 성균관대 교수(경총 추천)와 유철규 성공회대 교수(민주노총), 김우창 카이스트 교수(한국노총), 이성엽 고려대 교수(소비자단체협의회), 전상경 한양대 교수(보건사회연구원) 등이 의결권전문위 위원이다.

◇국민연금 의결권전문위 역할 확대…전문성 부족 지적도

의결권전문위는 최근까지 기금본부가 요청한 안건만 심의할 수 있을 뿐, 개별 안건의 독자적인 상정 권한을 갖지 못했다.

하지만 국민연금의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내부 투자위원회 찬성에 청와대와 보건복지부의 압력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의결권전문위 역할 확대의 목소리가 커졌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의결권전문위 위원 3인 이상 요청 시 안건 부의 요구권을 줄 수 있도록 기금운용위원회에서 통과시키기도 했다.

올해 주주총회 시즌에는 의결권전문위가 역대 최다 의결권 행사 안건을 심의하면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의결권전문위는 삼성물산 이사 선임과 감사위원 선임 반대 의결권 행사를 결정했으며, KB금융지주 노조 추천 사외이사 선임 반대, 정관변경 안건 등도 심의했다. 백복인 KT&G 사장 선임과 KT&G 사외이사 현원 유지, 사외이사 선임 안건 등도 검토했다.

의결권전문위가 국민연금 의결권 행사의 중심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131조 원에 달하는 국내 주식 포트폴리오의 의결권 결정을 도맡아 하기에 역량이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국민연금은 한 해 동안 주주총회에서 수백 건의 의결권 행사 의사결정을 내리는데, 의결권전문위는 전담 기관이 아니며 이를 뒷받침해 주는 전문 인력도 없다.

위원들 대부분이 교수라는 본업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심도 있는 의사결정을 내리기에 시간도 부족한 상황이다.

결국, 의결권자문사의 분석 자료 등에 의존해 의결권 행사 결정을 내리게 되는데, 의결권자문사의 영향력이 과도하게 세지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연기금의 한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전문 운용역들이 한 기업 의결권을 분석하는데도 수일이 걸리는데, 전담도 아닌 의결권전문위 위원들이 국민연금 의결권 대부분을 행사한다면 의결권 행사 전문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다른 연기금의 CIO는 "연기금의 수익률과 안정성을 직접 고려하지 않는 의결권자문사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며 "국민연금 의결권전문위 위원도 상당수 교수로만 이뤄져 시장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설명했다.

kphong@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