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고유권 기자 = "최근 경기지표를 보면 여러 가지 각도로 해석할 수 있는 신호들이 혼재돼 있다. 경기 상황은 나쁘지 않다. 현재로써는 올해 3% 성장 목표를 수정할 계획이 없다"

불과 두 달 전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전반적인 거시상황을 보면 3% 성장 경로를 유지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청년실업 등 고용 상황이 여의치 않고, 신흥국 불안 등으로 대내외 여건이 반드시 좋은 상황은 아니지만, 수출과 소비, 투자 등이 받쳐 주면서 3% 성장은 가능할 것이란 예측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18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서 결국 올해 3% 성장 목표를 포기했다. 경기 회복 흐름이 지속하고 있다던 낙관적 전망을 조금씩 내려놓기 시작했다.

정부가 제시한 올해와 내년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각각 2.9%와 2.8%다.

그간 정부가 경제정책을 추진하면서 가이드라인처럼 그어놨던 3%의 벽을 스스로 허문 것이다.

저출산 심화와 생산가능 인구 감소의 본격화 등 구조적 요인들까지 고려해 추정한 잠재성장률(2.8∼2.9%) 수준을 새로운 성장의 가이드라인으로 잡아 놓은 셈이다.

정부는 일자리 창출을 강화할 수 있도록 '우리 경제가 잠재 수준의 성장을 지속하겠다"고 했다.

현 정부 경제정책의 핵심인 일자리 만들기를 정책 추진과 성장의 목표로 삼겠다는 의지로 보이지만, 대내외 경제 상황을 고려하면 정책 목표 달성을 위해 잠재성장률 수준의 성장 정도라도 하겠다는 얘기로도 들린다.

김동연 부총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한 직후 열린 '하반기 이후 경제여건 및 정책 방향' 브리핑에서 성장률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게 된 고민의 일단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는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전망을 과거처럼 하는 게 맞는지 이 시점에서 국민에게 정부가 경제를 어떻게 보고 있는지, 현실적인 체감경기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감안해 할 것인지를 고민하다 후자를 선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구조적 요인에 더해 정부가 밝힌 부정적 경기 요인들까지 고려하면 2.8∼2.9%의 성장 목표도 지나치게 낙관적일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현 상황에 대한 해결 노력이 없으면 성장과 고용 등 어려움이 지속할 가능성이 있다"며 사실상 경기 대응이 쉽지 않음을 인정했다.

김 부총리도 "성장세가 둔화할 수 있고, 고용이나 소득분배 부진도 단기간 내에 나아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한다"고도 했다.

미중 통상마찰과 글로벌 통화정책의 정상화 등으로 국제무역과 금융시장의 불안이 확산하고, 시장과 기업의 경제 마인드가 살아나지 않으면 경제 상황이 더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고도 우려했다.

정부가 제시한 각종 경제지표 전망치에서도 이러한 점은 고스란히 나타난다.

그간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 돼 온 수출 전망과 관련해 정부가 부정적인 뉘앙스의 입장을 보인 것이 단적이다.

정부는 세계 경제 회복 과정에서 수혜를 본 것은 반도체와 석유화학 등 일부 업종에 한정돼 있다고 밝혔다.

다른 제조업체들로까지 온기가 퍼지지 못하면서 세계 경제 회복 흐름이 삐끗하면 수출도 장담할 수 없다는 우려감을 드러낸 것이다.

실제 이러한 점은 수출과 제조업체들의 설비투자 지표에서 고스란히 나타난다.

수출과 설비투자는 각각 올해 6월과 5월까지 6.6%와 4.8% 증가했지만, 반도체를 제외하면 각각 0%와 -1.4%로 곤두박질친다.

반도체 편중 현상이 얼만큼 심각한 상황인지를 반영한 수치다.

정부는 지난해와 올해 두 번에 걸쳐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집행하는 등 경기를 살리기 위해 재정을 대거 투입하는 정책을 펴 왔다.

하지만 결과는 초라했다. "추경 집행 등에도 불구하고 경기 불확실성은 확대됐다"며 정부도 이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다.

수십조 원의 돈을 풀었지만, 그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점을 시인한 셈이다.

김동연 부총리는 전날 열린 당정협의에서 "거시지표와 달리 체감경기와 민생이 매우 엄중한 상황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거시 경제지표와 체감경기 사이의 괴리가 심각한 상황"이라고도 했다.

두 달 전 "여러 지표로 봐 경기는 오히려 침체국면의 초입 단계에 있다고 본다"며 경기논쟁의 불을 댕겼던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의 발언에, "최근 통계를 갖고, 특히 월별 통계를 갖고 판단하기엔 성급한 측면이 있다"며 반박하던 것과 완전히 달라진 입장이다.

김 부총리와 정부가 이처럼 돌변한 것은 최저임금 논란과 그에 따른 고용 쇼크, 소비심리 악화 등이 맞물린 측면이 있다.

이 중에서도 고용은 우리 경제에 가장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일자리 창출을 첫 번째 국정과제로 내세웠던 문재인 정부로써는 그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더욱 크다.

정부는 올해 취업자 증가 목표를 당초 32만 명에서 18만 명으로 무려 14만 명이나 낮췄다. 정책 실패를 스스로 인정한 꼴이다.

그러면서도 또다시 내놓은 정책은 대규모 재정 투입이다. 각종 세제지원도 동원한다.

근로장려세제(EITC) 대상과 혜택을 두 배로 확대하고, 고령자 일자리 확대를 위해서도 재정을 투입한다. 기초연금 인상 시기도 앞당긴다. 청년구직자에 대한 구직활동지원금 지급 기간도 늘리는 등 취업 지원 혜택도 늘린다.

하지만 정부가 이와 같은 임시방편식 정책 추진을 통해 소기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재정 만능론'에 빠져 숲을 가꾸지 않고, 나무에 물만 뿌리고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그런데도 김 부총리는 재정 역할을 더욱 적극적으로 펴나가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국제통화기금(IMF)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에서도 한국의 더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이구동성으로 얘기하고 있다"며 "내년에도 재정을 더욱 적극적인 방향으로 운용할까 생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내년 총지출 증가율도 7% 중반 이상으로 가져가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도 했다.

김 부총리는 "가정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미중 무역갈등이 나쁜 시나리오로 갈 경우 성장 전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도 "정책을 잘 추진해 3% 성장 경로로 복원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그것이 정부의 지향점이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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