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연합인포맥스) "나는 수십 년간 반(半) 퇴직 상태였다"

구름 인파가 몰린 지난 5월 버크셔해서웨이의 연례주주총회에서 아흔을 바라보는 워런 버핏 최고경영자(CEO)는 "현재 반 퇴직 상태가 아니냐"는 질문에 농담 섞인 말투로 이렇게 웃어넘겼다. 그리고 자신이 반 퇴직 상태여도 사실상 달라진 게 없었다고도 말했다.

버핏은 상당 규모의 투자 결정을 다른 경영진에 맡기고 있다고 강조하며 자신의 퇴임 이후에도 버크셔헤서웨이의 성공이 이어질 것이라는 점을 주주들에게 인식시키려고 노력했다.

버핏과 찰스 멍거 부회장은 이후에도 후계 이슈에 대한 수많은 질문에 답해야 했다. 포스트 버핏 시대가 임박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버핏은 "현재의 명성은 내가 아닌 버크셔해서웨이의 것"이라며 "그 명성이 나와 찰스 멍거에게 의존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2011년만 해도 "우리 회사에는 CEO가 될 만한 사람이 4명"이라던 버핏은 올해 초 그레그 아벨(56) 비보험 부회장, 아지트 자인(67) 보험 부회장을 사실상 유력한 후계자로 낙점했다.

긴 시간을 두고 후계 후보들을 관찰하고 시험해본 것으로 알려진 버핏은 당시 아벨과 자인을 나란히 승진시키면서 "경영권 승계 작업의 일환"이라고 했다.

버핏 없는 버크셔헤서웨이 만큼은 아니지만, 월가도 후계를 준비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차기 CEO로 데이비드 솔로몬 최고운영책임자(COO, 56)를 공식 임명했다.

무려 12년을 CEO로 일한 월가 최장수 CEO인 로이드 블랭크페인이 은퇴한다. 그는 50대 초반에 CEO에 올라 60대 중반을 바라보고 있다.

이미 3월 블랭크페인의 승계자로 내정된 솔로몬은 시장의 예상보다 이른 10월부터 골드만삭스의 '솔로몬 시대'를 열게 된다.

솔로몬은 2016년 게리 콘 백악관 경제위원회 위원장이 골드만삭스를 떠나 정치계로 입문하면서 하비 슈워츠 COO와 함께 골드만삭스의 후계자 유력 후보로 떠올랐다. 솔로몬은 15개월간 치열한 후계 경쟁을 했다.

디제잉과 일렉트로닉 댄스 등을 즐기는 그에게는 골드만삭스가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여온 트레이딩과 투자부문 외에 최근 줄어든 수익을 늘리기 위해 진출한 소비자금융에도 집중하라는 임무가 떨어졌다.

'월가의 황제'로 불리는 제이미 다이먼 JP모건체이스 CEO의 후계구도도 진행형이다.

2005년 12월에 CEO로 취임해 이제 CEO로 금융위기를 겪은 유일한 인물인 다이먼은 올해 5년 임기 연장으로 17년간 JP모건 CEO 자리를 지키게 됐다. 그는 지난해 2천830만 달러의 연봉을 받아 금융회사 연봉킹 기록도 가지고 있다.

JP모건은 다이먼의 임기를 연장하면서 고든 스미스(59) 소비자금융 대표와 대니얼 핀토(55) 기업투자은행(CIO) 대표를 공동 사장 겸 공동 COO로 승진시켰다.

JP모건의 '넘버2' 직책을 맡은 두 사람이 표면상으로는 가장 유력한 후보들이지만, 다이먼 회장의 임기가 끝나는 5년 뒤면 이들은 60대여서 실제 가능성은 작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이런 가운데 최근 여성인 마리안 레이크(48) 최고재무책임자(CFO)가 부상했다.

모건스탠리 역시 차기 CEO 후보로 거론되는 테드 픽(49) 트레이딩 부문 대표와 프랭크 페티가스(57)를 승진시켰다. 이들은 현재 모건스탠리의 제임스 고먼 CEO를 이을 차기 CEO 후보로 거론됐다.

60세가 되는 고먼 CEO가 향후 3~5년간 CEO 자리를 지킬 것으로 보이지만 후계구도 준비 작업에 들어갔다.

월가에서는 "한 시대의 막이 내리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금융위기 이후 10년간 월가를 호령했던 그들이지만, 60~70대에 들어서면서 세대교체를 거스를 수 없었다.

미국 6대 은행의 현재 CEO들은 49세에서 56세 사이에 CEO가 됐다. '영파워'가 이끌 10년은 월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 궁금해진다. (곽세연 특파원)

sykwak@yna.co.kr

(끝)
저작권자 © 연합인포맥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