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윤은별 기자 = 증권사와 ESG. 두 단어 간의 연결고리는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ESG라고 한다면, 흔히 전기를 아끼거나 플라스틱을 줄이는 정도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이들이 많다. 선의로 행하는 사회적 활동쯤으로 여기는 셈이다. 돈을 굴리고 버는 게 주업인 증권사와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하나증권 FICC본부는 얼마 전 독특한 파생 거래 계약을 체결했다. 이른바 'ESG 본드 포워드(채권 선도)' 거래다.

하나증권이 일정 기간 뒤 거래 상대방인 크레디아그리콜 서울 지점에 독일 국채를 매도하고 현금을 결제받기로 약정하는 계약이다. 여기까지는 알려진 본드 포워드의 형태와 유사하다.

이 계약에는 만기일이 됐을 때 하나증권이 탄소 감축량 목표를 달성했다면 사전에 합의된 가격에 추가 스프레드를 얹어 채권을 매도할 수 있는 옵션이 붙어있다. 구체적으론 온실가스 배출량과 금융 배출량을 4.2%P, 7%P 줄이는 목표다.

김정훈 하나증권 FICC본부장

이번 거래를 주도한 김정훈 하나증권 FICC본부장(상무)은 "이번 파생 거래는 기존 탄소배출권, ESG 채권 등 ESG 테마를 가진 상품을 넘어서 증권사의 탄소 감축 활동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라면서 "ESG 활동과 직접 관련된 금융투자, 파생 거래는 그동안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업마다 설정하고 있는 ESG 과제를 파생 거래와 연계한 보기 드문 거래다. 특별한 벤치마크 사례 없이 이뤄져 'ESG 아이디어'가 실현된 셈이기도 하다.

그는 "강성묵 하나금융 부회장 등 하나증권 경영진의 ESG 관련 상품 개발 의지가 컸다"면서 "채권선도거래와 ESG 관련 KPI의 연계에 착안해 다수의 거래 상대방 기관에 문의했고, ESG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크레디아그리꼴과 수개월의 협의 끝에 거래가 진행됐다"고 말했다.

이번 ESG 연계 파생거래 성사의 가장 어려웠던 점은 공인 지표의 부재였다고 김 본부장은 언급했다.

서스테이널리틱스(Sustainalytics) 등의 국제적으로 공인된 ESG 평가가 하나증권에는 부여되지 않은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거래의 기준이 되는 탄소 배출량 감축 KPI는 하나금융지주의 지속가능 보고서를 벤치마크로 삼아 동일한 비율로 목표를 설정했다"고 말했다.

이어 "상대방 입장에선 유연하게 거래를 받아준 셈"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다면 이런 거래로 양 거래 당사자들에게는 어떤 이익이 있을까.

일단 하나증권 입장에선 탄소 배출량을 감축하면 해당 거래상 추가 이익을 얻을 수 있으니, 직접적인 수익 창출 기회로도 작동한다.

이와 함께 물론 ESG 성과를 높이고 관련된 평가를 개선할 수 있겠지만, 단순한 이미지 제고에 그치는 것은 아니라는 게 김 본부장의 설명이다.

ESG에 선도적인 금융기관이 장기적으로 자금 조달과 영업력 유지에 유리해질 수 있는 금융 환경이기 때문이다.

김 본부장은 "연기금이나 관련 펀드 등에서 ESG와 관련한 자금 조달이 늘고 있고, ESG 테마에만 투자할 수 있는 자금도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이런 투자 풀에서 빠진다는 이야기는 조달 기회를 뺏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ESG 관련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 당장의 손해는 없어 보이지만, 결국은 이런 기회가 계속 커질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이에 국내 기관보다 비교적 ESG 투자에 관심이 많은 외국계 IB가 주 거래 대상이다.

김 본부장은 "ESG 투자에 적극적인 유럽 지역 IB의 관심이 좀 더 큰 편이긴 하지만, 아시아계나 미국계 기관의 관심도 작지 않은 편"이라고 언급했다.

이런 독특한 거래가 성사된 데에는 ESG 관련 투자에 대한 하나증권의 높은 관심도가 배경이 됐다.

일례로 하나증권은 지난 2021년부터 투자 포트폴리오의 화력발전 노출도를 관리하고 있다. 포트폴리오상 신재생에너지 투자 비중을 높이고 화력발전 비중을 줄이는 것이 자체 KPI다. 일부 화력발전 기업의 회사채 매수는 아예 제한된다.

앞서 지난 2021년에도 ESG 연계 금리통화 스와프를 HSBC와 체결하기도 했다. 당시 거래도 하나금융지주의 ESG 등급 개선 여부에 따라 금리가 결정되는 거래였다.

김 본부장은 이처럼 ESG와 연계한 새로운 금융투자 거래를 향후 늘릴 것이라는 포부를 내놨다.

채권 선도거래, 국고채 스왑거래, 탄소배출권 등 기존의 금융투자 분야에서 ESG와 연결할 만한 다양한 아이디어를 모색할 계획이다.

김 본부장은 "미국 외 역외 투자자를 대상으로 발행하는 EMTN(Euro Meidum Term Note)을 통해 하나금융지주의 국제 ESG 지표와 연계된 채권 발행을 검토 중"이라면서 "ESG 활동의 수준 향상과 더불어 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ESG 활동은 결국 비즈니스의 지속 가능성과도 연관돼 있다"면서 "이제 첫발을 뗐고 향후 의미 있는 수준까지 규모를 키워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ebyu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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