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금융시장은 늘 조마조마하다. 수백, 수천조원의 돈이 쉼 없이 흐르고 복잡한 변수들이 도사리는 곳이다 보니 길을 잃으면 낭패를 볼 수 있다. 운이 좋으면 뻥 뚫린 아우토반에서 과속 질주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돈의 혈관이 막히면 미로 속 여기저기서 아우성을 친다. 어찌어찌 헤쳐 나오더라도 이미 밑천이 드러난 이후가 될 수도 있다. 조심스럽게 가격을 찾아가는 와중에도 지나친 욕망이 개입하면 판 자체가 크게 흔들린다. 그렇다 보니 시장 참여자들의 마음은 항상 불안하다. 경제가 호황이든 침체이든 상관없다.
 

확대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
(서울=연합뉴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은 9일 오전 서울 은행연합회관에서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행정안전부 차관, 금융감독원장 등과 함께 확대 거시경제·금융현안 간담회를 개최했다. 2023.7.9 [금융위원회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photo@yna.co.kr


금리 인상 기조가 끝나고 되레 금리를 내리는 시기가 조만간 올 것이란 기대가 점점 커지고 있다. 과도한 유동성이 촉발한 글로벌 고물가 시대가 서서히 잦아들고 있다는 점이 그런 기대를 키운다. 하지만, 기대는 기대일 뿐 통화당국은 여전히 그런 기대를 경계한다. 금리 인상 속도를 조금 낮출 수는 있지만, 아예 정책의 방향을 바꾸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경고한다. 금리를 내리면 다시 빚의 덫에 걸릴 수 있다는 경고와 오랜 고금리의 부작용이 결국 경기침체를 유발할 것이란 주장이 맞붙는다. 어찌 보면 경계점에 다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다. 더 이상 올리지도, 그렇다고 내리지도 못하는.

전망과 주장이 강하게 맞부딪치는 이러한 상황은 조심스럽다. 작은 변수가 툭 튀어나오더라도 판을 크게 흔들 수 있기 때문이다. 되는 것도 없고 안되는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고, 좋은 듯 나쁜 듯 구별하기 힘든 상황에서는 더 그렇다. 최근 새마을금고 사태가 어찌 보면 그런 트리거가 됐다고 본다. 은행에 맞먹는 자산 규모를 가진 새마을금고의 무리한 투자와 그에 따른 부실이 뱅크런으로 확산한 것은 분명한 위험 요인이다. 하지만, 시스템 전체를 뒤집을 정도의 위험은 아니었다고 본다. 새마을금고와 같은 상호금융 전반의 문제로 비화했다면 모를까. 물론 정부의 발 빠른 대응이 없었다면 '제2의 레고랜드 사태'가 될 수는 있었다. 그렇더라도 충분히 정부와 시장이 감내할 수 있는 정도의 '조금은 위험했을 수도 있을뻔한 해프닝' 정도가 아닐까.

벌써 9개월째다. 2천50억원의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을 못 갚겠다고 강원도가 디폴트 선언을 하면서 채권시장을 흔들어 놓은 뒤 대책 마련을 위해 경제·통화·금융당국 수장들이 모인 게 어느덧 9개월 동안 이어지고 있다. 추경호 경제부총리와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최상목 대통령실 경제수석은 어김없이 매주 일요일 오후 2시 은행회관에서 만난다. 소위 'F4' 회의라는 협의체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사실상 상설화한 거시·미시·금융을 망라하는 비공식 수장 회의다. 9개월 동안 회의가 열리지 않은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회의에 참석하는 수장들과 각 기관의 실무자들은 '월화수목금-일'의 일상을 계속하고 있다.

지난 9일 모처럼 F4 회의 참석 수장들이 공개된 사진에 등장했다. 새마을금고 사태에 대한 입장과 대책을 논의하는 것을 공개한 것이다. 시장에 던지는 메시지도 내놨다. 새마을금고가 유동성 확보를 위해 더 이상 채권을 던지지 못하도록 국책은행과 시중은행을 동원해 유동성을 공급하는 대책도 끌어냈다. 시장은 잠잠해졌다. 예금자 보호 한도를 보장하고 세제 혜택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정부의 대책으로 새마을금고에서 돈을 뺐던 고객들도 다시 돈을 맡기고 있다. 지난해 10월 레고랜드 사태가 터진 이후와 비교하면 신속한 대응이다.

사실 레고랜드 사태 이후 F4 회의에서 논의된 대규모 유동성 공급 대책으로 채권시장 등 금융시장은 빠르게 안정세를 찾았다. 이번 새마을금고 사태에 대한 신속 대응도 어찌 보면 지난 9개월 동안 축적된 경험과 매뉴얼이 그대로 적용된 측면이 있다. 일부 참석자는 농담처럼 "시장도 안정됐는데 회의 그만하면 안 될까요"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그럴 수 없었던 것은 시장에 늘 도사리는 불확실성이 작지 않다는 것을 참석자 모두가 알기 때문이다. 정부와 통화당국이 시장의 모든 변수와 불확실성을 제거해 줄 수는 없다. 하지만, 일이 터지기 전에, 또는 터졌을 때 빠르게 상황을 분석하고 신속히 대응에 나서야 하는 것은 그들의 의무다. 지난 9개월간 휴일도 반납하고 충무김밥으로 허기를 달래면서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애쓴 점은 박수받아 마땅하다. 그런데 여전히 시장은 불안하다. 그래서 앞으로도 좀 더 애써줘야 할 것 같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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