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인포맥스) 2004년 10월 말. 윤종규(당시 국민은행 부행장, 현 KB금융그룹 회장, 이하 호칭 생략)는 사표를 던졌다. 삼일회계법인에서 회계사로 일하다 2002년 3월 국민은행 재무전략본부장(CFO)으로 영입된 지 2년 7개월 만이었다. 같은 해 9월 국민카드 합병 회계 처리를 잘못했다며 금융감독위원회로부터 감봉 3개월의 중징계를 받은 게 이유였다.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다. 사표를 언제 던질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결국 "책임지겠다"며 사표를 던졌다. 감봉 3개월의 중징계는 향후 3년간 금융기관에서 등기임원을 할 수 없는 족쇄다.
 

윤종규 KB금융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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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당시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만류했다. '삼고초려' 끝에 자신을 국민은행으로 데리고 온 김정태의 거듭된 만류에 고민이 됐지만, 처음의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주택은행을 합병해 초대 통합 국민은행장이 된 김정태는 윤종규를 데려오기 위해 무척 애를 썼다. 서태식 삼일회계법인 대표를 직접 만나 데려갈 테니 놔달라고 부탁까지 했을 정도다. 부행장 인사를 하면서 윤종규의 자리를 비워놓기까지 했다. 결국 국민은행행(行)을 선택한 윤종규를 위해 영입 보도자료에 '상고 출신 천재'라는 문구까지 넣어줬다. 채 3년도 안 돼 책임을 지고 떠나겠다는 윤종규를 보는 김정태는 미안한 마음이 컸을 것이다.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시인 이형기의 '낙화'의 한 대목을 던지면서 윤종규는 그렇게 떠났다. 잘 나가던 회계사에서 뱅커로 변신해 새로운 도전에 나섰지만, 윤종규는 채 50살이 안 돼 다시 야인이 됐다. 광주상고를 나와 1974년 외환은행에 들어간 윤종규는 정말 열심히 살았다. 성균관대 경영학과를 야간으로 다니면서 대학 졸업장도 받았고 1980년에는 공인회계사와 함께 행정고시(25회)에서 차석으로 합격하기도 했다. 물론 대학 때 학내 시위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임용에서 탈락하긴 했지만, 김정태가 그를 '상고 출신 천재'라고 부른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토록 '모셔 오고' 싶은 사람이었음이 분명하다.


6년 만인 2010년 7월 어윤대 KB금융지주 회장의 '부름'을 받아 윤종규는 KB금융의 CFO로 화려하게 복귀한다. 결국 4년 뒤 KB금융의 수장이 됐다. 드라마틱한 반전이었다. 1차에서 8명, 2차에서 4명 등 쟁쟁한 후보들과의 경쟁을 뚫고 KB금융을 이끌 회장 자리를 꿰찼다. 윤종규는 그 이후로도 두 번이나 더 주주들의 부름을 받아 회장을 했다. 9년간 회장을 하는 동안 KB금융은 독보적인 리딩뱅크가 됐다. 시스템과 조직문화를 안정화하고 사업 포트폴리오를 확대한 결과다. 고스란히 윤종규의 업적으로 기록된다.

욕심이 생길만하다. 좀만 더하면 더 나은 회사로 만들 수 있을 것만 같을 것이다. 인지상정이다. 11월에 임기가 끝나지만 마음만 먹으면 이사회와 주주들로부터 다시 한번 기회를 받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윤종규는 2004년 10월 때처럼 이형기 시인의 '낙화'를 다시 꺼내 들기로 했다. 이제 가야 할 때가 됐음을 직감한 것이다. 아쉬움이 왜 없겠는가. 하지만 9년간 할 만큼 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기어이 1등을 만들어 놨으니 자신의 역할은 다했다고 봤을 것이다. 그간 잘 구축해 놓은 '유능한 후배'들이 꿈을 펼 수 있는 승계시스템도 잘 돌아가고 있으니 '사람 리스크'로 인해 KB금융이 단번에 무너지는 일은 없을 것이란 자신감도 있을 것이다.

지난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취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직접 인사를 하러 찾아간 사람이 윤종규였다고 한다. 굳이 찾아오지 않아도 된다는 이 원장의 만류에도 윤종규는 축하 인사를 하러 갔다. 오랜 검사 생활로 이런 일이 익숙하지 않았던 이 원장은 당시 그 장면이 강하게 뇌리에 박혔다고 한다. 윤종규를 규정짓는 몇 가지 키워드가 있는데 배려와 겸손이다. 그렇다 보니 적이 없다. 욕을 하는 사람도 찾기 어렵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금융지주 회장을 둘러싸고 파열음이 계속되는 와중에도 윤종규의 거취를 둘러싼 이슈는 거의 없었다.

사실 11월 임기가 끝나는 윤종규가 연임에 도전하지 않고 4월이나 6월쯤 일찍 물러날 수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간헐적으로 흘러나오는 얘기였다. 오히려 최대실적 행진을 이어가는 상황에서 4연임도 가능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주변에서도 윤종규가 어떤 마음을 가졌는지 잘 알지 못했다. 결국 용퇴를 공식화한 것은 차기 리더십 선임을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우리금융지주의 혼란상과 예상을 깬 신한금융지주의 수장 교체를 모두 봤다. 버티면 어찌 되는지, 물러날 시기가 애매하면 어떤 문제가 있을지를. 무엇보다 낙하산을 막고 잘 구축한 승계 프로그램이 가동되도록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잘 봤을 것이다. 결국 윤종규의 용퇴 시점은 스마트했다. 내부에는 긴장을, 외부에는 틈을 주지 않는 전략이었던 셈이다. 임기가 앞으로 석 달 정도 남았다. 짧은 기간이지만 윤종규의 스마트한 마무리는 어떨지 궁금해진다.

(정책금융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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